‌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베토벤의 음악 TOP 5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베토벤의 음악 TOP 5

우리가 잘 아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에 대하여 흥미로운 말이 있습니다.
"바흐는 신을 노래하고
모차르트는 인간을 노래하고
베토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노래한다."

음악가들의 음악가

몇몇 톱스타들에게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습니다. 다른 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실력과 경력,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에게 붙는 말이죠. 이런 이들은 후배들에게 큰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베토벤은 '음악가들의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악한 성장배경과 음악인에게는 치명적인 청각 장애를 이겨내고 실력으로 인정받고, 아직까지도 클래식 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음악가 베토벤
1789~94년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은 무너지고 시민계급이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 세계에도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음악가는 더 이상 왕족이나 귀족에게 고용되어 주문된 곡, 그들의 취향에 맞는 곡만을 작곡하지 않고 작곡가 자신의 철학과 취향에 맞는 곡을 작곡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음악계에서는 <낭만주의> 사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왕족, 귀족의 굴레를 벗어났다고 해도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고 유행에 따르는 곡이 곧 돈이 되었습니다. 작곡가도 사람인데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작곡가들은 자신이 작곡하고 싶은 곡 vs 대중이 좋아하는, 돈이 되는 곡 사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생계 걱정 없이 자신이 작곡하고 싶은 곡들을 마음껏 작곡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작곡가 중 한명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음악인은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낮은 신분의 악사,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불안한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예외적으로 ‘예술 그 자체’로 여겨졌고, 당대 사람들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1.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Kreutzer>
문학과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작곡가들이 시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붙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클래식 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 작품을 쓰는 작가들도 있죠.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톨스토이(1828-1910)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듣고 동명의 소설을 썼습니다. 금욕과 성적 절제라는 청교도적 신념에 따라 살았던 톨스토이 개인의 가치관이 들어간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편과 다툼이 잦았던 아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녀는 한 파티장에서 미남 바이올리니스트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그 둘의 이중주를 들으며 치밀어오르는 남편은 결국 아내를 칼로 찌르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기차에서 만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베토벤의 음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격렬하게 내달리는 이 곡의 도입부를 듣고 있자면 소설 속 남편이 느끼는 격렬한 감정, 애증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들은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 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건 헛소리이고 거짓말입니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할 따름입니다. 에너지와 감정을 끌어올려 파멸로 이어지게 합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 중-



2. 현악사중주 11번 <세리오소 Serioso>
유명한 클래식 곡들은 대개 후대 사람들에 의해 별명이 붙여지고 불립니다. 우리가 흔히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운명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듯이요. 하지만 이는 베토벤이 직접 붙인 제목이 아니므로 정확한 제목으로 불러주는 것이 맞습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1번은 예외적으로 베토벤이 직접 <세리오소>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점에서 다른 곡들과 차별됩니다. ‘엄숙, 성실’이라는 뜻이죠.
하이든, 모차르트의 계보를 이어 ‘현악사중주’라는 장르의 틀을 다지고 발전시킨 베토벤. 하지만 왜인지 이 곡을 작곡하고 난 후 10년 동안 현악사중주를 작곡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베토벤 중기의 작곡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곡 중에 하나로 꼽힙니다.
클래식은 가사가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나만의 상상력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음악이 클래식입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각각의 악기소리로 가상의 상황과 인물을 그려보곤 합니다. 비슷한 듯 다른 네 명의 사람이 모여 격렬한 토론을 하는 듯한 <세리오소> 1악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제1 바이올린은 주장이 강한 중년 남자, 제2 바이올린은 중간에서 분위기를 매끄럽게 만드는 여자, 비올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소심해 계속 중얼거리기만 하는 중년 남자, 첼로는 약삭빨라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박쥐같은 젊은 남자. 이런 식으로요. 연주 동영상을 감상하면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3.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Emperor>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베토벤의 생활이 궁핍하던 때에 그를 후원해 주던 루돌프 대공에게 바쳐진 곡입니다. <황제>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흔히 연결시키는 나폴레옹과도 관련 없는 곡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곡의 성격 때문에 나중에 붙여진 별명이죠.
베토벤은 작곡가이기 이전에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에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큰 완성도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황제>의 2악장은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자신의 장례식에 써달라며 직접 선곡한 곡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생의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 이 곡을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편안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주어서가 아닐까요? 걱정 근심 다 내려놓고 떠난 따뜻한 휴양지의 바닷물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주는 2악장을 꼭 들어보세요.


4. <에그몬트 서곡> Op.84
저는 ‘에그몬트’라는 제목을 들을 때마다 왠지 달걀프라이가 생각나곤 합니다. 이놈의 식탐...ㅎㅎ
'에그몬트'는 실존 인물로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16세기, 네덜란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전쟁에서 훈장까지 받은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고전주의 작가인 괴테(1749~1832)가 이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아서 희곡 <에그몬트>를 쓰고, 베토벤은 괴테의 <에그몬트>을 위한 동명의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베토벤은 '에그몬트 백작'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웅장하고 비장한 도입부를 작곡합니다. 곡 전체에 걸쳐 고통에 맞서고자하는 한 인간의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데, 이는 베토벤 자신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5. 교향곡 9번 <합창 Choral>
베토벤의 곡 TOP 5, 마지막 곡입니다.
후대 작곡가들에게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절대적인 기준을 마련한 베토벤. 그 중에서도 교향곡 9번 <합창>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연말 혹은 연초에 많이 들리는 음악이기도 하죠.
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던 베토벤은 자유로운 표현력을 가진 ‘언어’가 ‘음악’과 만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당시에 ‘성악’과 ‘기악’의 결합은 오페라나 가곡 등의 장르에만 제한이 되어있었는데 베토벤은 교향곡까지 그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괴테와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독일 작가 쉴러(1759~1805)의 송가 '환희에 붙여 An die Fraude'를 가사로 채택, 대규모의 합창 파트를 교향곡 9번의 4악장에 넣었습니다. ‘환희와 기쁨 속에서 하나 되는 인류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는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그 압도감과 성스러움에 온몸이 짜릿해지곤 합니다. 4악장 맨 끝 부분의 테마가 워낙 유명해서 그 부분만 친숙한 분들이 많으실텐데 이 기회에 전곡 다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베토벤의 색, 짙은 남색
저에게 베토벤은 짙은 남색의 이미지입니다. 바라보고 있자면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정신이 아득해지는 깊은 바다의 색. 또 신뢰감을 주는 단단한 색이기도 하여 베토벤의 삶과도 무척 어울립니다.
제가 그린 그림 중 베토벤과 어울리는 그림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저녁, 거리를 걷다가 영감을 얻어 그렸습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인 마음을 그린 그림으로 짙은 색들을 위주로 써서 비장함, 강한 의지 등을 표현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