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웅들을 위하여

여성 영웅들을 위하여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독립운동가’라는 단어에 김구, 안중근, 안창호 등 남성 독립운동가의 얼굴만을 떠올립니다. 유관순 열사 외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이름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죠. 하지만 독립운동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14,329명 중의 독립운동가 중 여성 독립운동가의 비율은 272명으로 남성에 비해 훨씬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272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중 생애와 활동 기록이 남은 분들은 무척 적습니다. 임시정부의 살림을 도맡고,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군수품을 운반하는 등 지원 위주의 일을 했던 여성들은 기록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여성들은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자녀 양육, 시부모 봉양, 가사노동, 농사일까지 병행해야 했죠.


영웅.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한글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도 그렇고, 영어에서도 영웅이라는 단어의 기본형은 남성(남성형은 Hero, 여성형은 Heroine)으로 셋팅되어 있습니다. 기록조차 되지 못한 채 잊혀진 100년 전 여성 독립운동가들, 작년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큰 물결을 이루고 있는 미투운동(성폭력 고발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여성들, 평창 동계올림픽에 42%라는 역대 최고비율로 참여했던 여성 국가대표 선수들 등 과거와 현재의 여성 영웅들에게 바치고 싶은 곡들을 소개합니다.


베토벤 – 교향곡 3번 ‘영웅(Eroica)’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에 빠진 나라를 일으켜 세운 군 사령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 영웅에게 헌정하기 위해 교향곡 3번의 완성에 착수하던 베토벤은 1804년, 스스로 황제로 즉위해 독재정치를 시작하려는 나폴레옹의 소식을 듣고 “그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모든 인간 위에 올라서서 독재자가 되려는 것이다”라며 분개합니다. 그리고는 ‘보나파르트 교향곡’라고 써놓았던 악보 표지를 쫙쫙 찢어버리고 제목을 이렇게 바꿔 버립니다. ‘영웅 교향곡 - 한 위대한 인물을 기리며’.


쇼팽 – 폴로네즈 6번 ‘영웅(Heroic)’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던 쇼팽은 임종을 지키던 누나에게 “나의 몸은 파리에 있지만, 나의 영혼은 조국과 늘 함께했어. 내 심장을 폴란드에 묻어줘.”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애국심이 남달랐습니다. 스무 살까지 폴란드에 거주했던 쇼팽은 러시아의 거센 탄압이 시작되자 프랑스로 이주하여 활동합니다. 사랑하는 조국이 열강의 침략에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던 그는 폴로네즈, 마주르카 등 폴란드의 전통 음악색을 띄는 곡들을 작곡함으로써 그의 열정을 표현하고 조국의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이 곡의 부제인 ‘영웅’은 당시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가 곡을 듣고 나서 감상을 적은 편지 내용에서 유래하여 붙여졌습니다.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힘과 영감은 프랑스 대혁명을 연상시킨다. 이 폴로네즈는 영웅의 상징이 될 것이다."


생상 – 영웅(Héroïque) 행진곡
영웅적인 분위기의 행진곡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영국 작곡가 엘가(Edward Elgar, 1857-1934)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떠올릴 겁니다. 이 곡의 원제는 ‘Pomp and Circumstance’로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된 곡이죠. 이번 기회에 엘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프랑스 작곡가 생상의 행진곡을 한 번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생상의 ‘영웅 행진곡’은 보불전쟁에서 사망한 친구이자 화가인 헨리 르뇨(Henri Regnault, 1843-1871)를 기리고자 작곡한 곡으로 그의 첫 번째 교향시이기도 합니다. 생상의 음악은 동시대 프랑스 작곡가들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띕니다. 영웅적인 분위기, 활기로 가득 찬 이 곡에서 진지함을 바탕으로 다양한 감정을 녹여냈던 생상 음악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리스트 –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 7번 ‘영웅(Eroica)’

원래 ‘연습곡’은 기본적인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한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리스트는 대규모 콘서트홀의 수많은 청중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습곡을 사용했습니다. 15살 때 작곡한 곡들을 바탕으로 수많은 개정을 거친 후 1852년, 각 작품의 특성에 맞는 부제를 붙이고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판하게 됩니다. 이 연습곡집으로 인해 리스트는 ‘피아노계의 파가니니’라는 별명과 사람들의 경외심을 얻게 되죠. 동료 작곡가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리스트와 그의 연습곡을 두고 이렇게 평했습니다. “리스트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 음악을 작곡했다. 나만이 이 작품을 올바르게 연주할 수 있다며 우쭐대는 사람은 그가 유일할 것이다.” 이 중 7번 ‘영웅’은 리스트의 조국 헝가리의 음악색이 짙게 묻어나는 곡으로, 감동적인 피날레로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영웅적 음악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로시니 – 윌리엄 텔 서곡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 윌리엄 텔. 스위스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영웅이죠. 이 윌리엄 텔의 이야기가 로시니의 오페라로 탄생하기까지 재밌는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1797년, 스위스를 세 번째 방문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윌리엄 텔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글을 쓰려고 하다가 친구이자 극작가였던 쉴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에게 아이디어를 넘깁니다. 쉴러는 방문한 적도 없는 스위스의 역사를 공부하고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며 희곡 ‘윌리엄 텔’을 완성시킵니다. 이 희곡에서 영감을 받은 로시니는 4막 5장의 오페라 <윌리엄 텔>을 작곡하는데 현재 오페라는 거의 공연되지 않고 서곡만 자주 연주됩니다. 총 공연시간이 4시간으로 길기도 하고, 작품 속 테너 역을 맡을 역량을 가진 성악가가 적기 때문입니다.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마저도 ‘목에 지나치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실연을 거부하고 스튜디오 녹음만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