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과 쇼스타코비치


러시아 월드컵과 쇼스타코비치

‌2018 러시아 월드컵 포스터 X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8번’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를 기억하며>

세계인의 축제 중 하나인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지난 6월 14일에 시작해 7월 15일에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을 상대로 극적 우승을 거두어 ‘멕시코를 이긴 스웨덴을 이긴 독일을 이긴 한국’이라는 재미있는 타이틀을 얻었죠.
개인적으로 스포츠에 관심이 적을뿐더러 한국과 독일의 경기 이후로 주의 깊게 살펴본 경기는 없습니다. 제 주의를 끄는 것은 따로 있었죠. 바로 러시아 출신 화가 이고리 구로비치(Igor Gurovich, 1967- )가 디자인한 2018 러시아 월드컵 공식포스터입니다. 공식 포스터를 보면 러시아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Lev Yashin, 1929-1990)의 역동적인 자세, 딱딱하고 재미없는 서체, 주황색과 초록색의 대비, 축구공에 새겨진 러시아 지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러시아 미술의 독창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복고풍 스타일의 포스터를 제작했다고 는 하지만 1900년대 초, 전시 시대의 선동 포스터와 겹쳐 보이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전후로 소비에트 연방에서 생겨난 미술 사조인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사회주의 정부의 선전미술과 공공미술을 주도하며 크게 유행했습니다. 특히 거친 질감의 흑백 사진을 이용한 포토몽타주 기법, 대각선 등의 역동적인 구성, 대비되는 색채 사용, 견고한 서체를 사용한 포스터 이미지들은 민중들에게 직관적인 정보전달이라는 목적을 이루었고, 이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는 힘과 권위를 더욱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구성주의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미술을 통해 민중의 삶과 정신을 고양시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 건설, 즉 유토피아 건설에 이바지하고자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 목표는 좌절되고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은 스탈린 정권을 위한 선전, 선동에 동원되게 됩니다.


예술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보장했던 레닌과 달리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의 미술•음악•발레•연극•영화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을 평가, 검열하고 당국의 입맛과 목적에 맞게 변형시켰습니다. 한마디로 예술가를 ‘문화 노동자, 예술적 기능을 가진 노동자’라고 여긴 것이죠. 예술가들은 민중이 보고 듣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술, 전쟁의 사기를 높이는 예술을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기계적으로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직접적•실용적•선동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당국의 뜻을 거스르는 예술가는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고, 작곡가인 경우 그의 곡 연주가 금지 되고, 심한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숙청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로코피예프•쇼스타코비치•오이스트라흐•리히터•로스트로포비치 등도 사회주의 정권 아래에서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억압받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는 당국과 민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소비에트 연방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명이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당국에 충실했고 그로 인해 인기와 명예를 모두 누린 작곡가’가 과거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평이었다면 오늘날에 재해석되는 쇼스타코비치는 사뭇 다릅니다. 스탈린 정권에 철저히 이용되었던 작곡가,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권력에 굴복한 작곡가, 자존심도 목소리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수많은 작품 속에 반항심과 적개심을 은밀히 숨겨놓았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베토벤의 뒤를 이어 현악 4중주라는 장르의 예술성을 한 층 끌어올린 작곡가로 평가됩니다. 그가 작곡했던 총 15개의 현악 4중주 중 제일 유명한 것은 8번으로 1960년,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독일 드레스덴 방문 당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3일에 걸쳐 쓴 곡입니다. 그는 이 곡을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를 기억하며’라는 헌정사를 붙여 출판합니다. 시대를 반영한 이 강렬한 헌정사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욱 깊이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이한 점은 곡 전반에 등장하는 모티브(레-미b-도-시)입니다. 5개의 악장이 쉬지 않고 연결된 현악 4중주 8번은 이 모티브로 시작하여 이 모티브로 마무리 됩니다. 쇼스타코비치가 그의 이름과 성 앞 글자들을 따서 만든 이 서명동기, ‘DSCH 모티브’는 6여 년 동안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합니다. 절박함과 저항의 표시를 이 비밀스러운 모티브를 이용해 표현한 것이죠.


또 이 곡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얽혀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딸 갈리나는 ‘아버지는 이 곡을 자기 자신에게 헌정했다. 헌정사는 소비에트 연방 당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고 말했고, 아들 막심은 ‘아버지는 파시즘의 희생자가 아닌 소비에트 연방의 전체주의 희생자들을 위해 이 곡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친구이자 음악학자 레프 레베딘스키(Lev Lebedinsky, 1904-1992)는 ‘이 시기 쇼스타코비치는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 곡은 자기 자신을 위한 유서 같은 곡’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실제로 자살을 생각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이 곡을 썼을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두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당국의 강요로 공산당에 억지로 가입하여 우울함이 극도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시대, 어떤 장르이건 말이죠. 사회주의의 선전, 선동에 필요했기에 탄생한 구성주의 미술이 그렇고, 스탈린 정권의 취향과 의도에 맞는 음악을 작곡해야만 했던 쇼스타코비치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담긴 예술들 속에서 더 깊은 울림, 더 펄떡이는 생명력을 발견하곤 합니다. 2018년의 대한민국,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 중인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예술들 속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