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x 톨스토이 x 프리네 x 야나첵의 <크로이처 소나타>


베토벤 x 톨스토이 x 프리네 x 야나첵의 <크로이처 소나타>


마음이 지치고 무거울 때 종종 하늘을 쳐다보곤 합니다. 재미있는 모양을 한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면 저 구름이 예전에는 누군가의 갈증을 채워주는 물이었겠지, 예고 없이 내리는 비였겠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눈이었겠지... 혼자 상상해보곤 합니다. 또 인체의 60% 이상이 수분이라고 하니 물이야말로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물의 존재, 물의 순환처럼 영감이라는 것도 매 순간 얼굴을 바꿔가며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사실을 크게 깨닫는 순간들이 있는데 고전 문학과 클래식 음악 사이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발견할 때가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작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그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우상이었습니다.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시, 소설 구절에 멜로디를 붙여 예술가곡이라는 장르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괴테의 작품 중 한 청년의 인격적 성숙을 그린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시 ‘그대는 아는가 레몬 꽃 피는 남쪽 나라를’에 영감을 받아 멜로디를 붙인 작곡가는 베토벤·슈만·차이콥스키·리스트·멘델스존·슈베르트·토마 등이 있습니다. 특히 토마는 이 소설을 밑바탕 삼아 오페라 ‘미뇽(Mignon)’을 작곡하기도 했죠.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아 톨스토이가 동일한 제목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이라는 원제보다 더 많이 불리는 별명으로, 베토벤이 이 작품을 프랑스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처(Rodolphe Kreutzer, 1766-1831)에게 헌정했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크로이처는 평소 베토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이 곡을 두고 ‘난폭하고 무식한 곡’이라고 칭하며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톨스토이의 소설로 돌아가 볼까요. 질투심에 눈이 멀어 아내를 살해한 남편이 기차에 올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작합니다. 어린 아내와 애증의 결혼생활을 하던 주인공과 그들 사이에 우연히 등장한 잘생기고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그는 ‘아몬드 모양의 촉촉한 눈, 미소를 머금은 듯 입꼬리가 올라간 붉은 입술, 포마드를 발라 윤기가 흐르는 콧수염, 최신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을 하고 천박하지만 잘생긴, 여자들이 훈훈하다고들 하는 그런 얼굴’을 가졌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매력 넘치는 바이올리니스트와 자신의 아내가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영감과 열정을 나누고, 나아가 사랑을 나누었다고 상상하죠. 열등감과 질투에 시달리며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은 아내를 해치지 않으면 자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원래 음악이란 거 자체가 끔찍한 거지요. 흔히들 음악은 정신을 고양시켜 준다고들 합니다만 다 헛소리고 거짓말입니다! 그저 흥분만 돋울 뿐이죠. 음악을 들으면 평소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고,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라고 주인공이 비명에 가까운 큰 소리로 음악이 가진 마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고개를 반쯤은 끄덕거리게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상상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내의 잘못된 사랑의 장면을 그대로 묘사해 놓은 듯한 그림이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프리네(René-Xavier Prinet, 1861-1946)의 ‘크로이처 소나타’. 바이올리니스트가 왼손에 쥔 바이올린이 매우 허술하게 그려졌음에도 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낮은 채도의 방과 대비되는 남녀의 강렬한 몸짓과 욕망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커튼이 반 쯤 쳐진 캄캄한 창문을 보아하니 늦은 시간입니다. 피아노 위 작은 램프 속 빛이 그들의 욕망처럼 일렁이며 방을 밝히고 있고요. 리허설 중 바이올리니스트가 부인의 허리를 갑자기 움켜쥐며 일으켜 세운 듯 부인이 앉아있던 의자는 넘어지기 직전입니다.


체코의 대표 작곡가 야나첵(Leoš Janáček, 1854-1928) 역시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고 영감을 받아 현악 4중주 1번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로부터 영감을 받아’를 작곡합니다. 당시 38세 연하의 유부녀와 연애 중이던 야나첵은 이 책의 내용에 거부감을 갖고는 소설 속에서 남편에게 억울하게 죽임 당한 아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음악으로 풀어낸 절규랄까요. ‘톨스토이의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지치고 고통에 찬 불쌍한 여성을 상상하며 이 곡을 작곡했다.’라고 곡에 대해 직접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 음악 기법에서 모두 벗어난 야나첵 특유의 현대 음악적 기법을 사용해 더욱 매력을 발하는 곡입니다.
베토벤에서 시작해 톨스토이·프리네·야나첵까지. 한 방울의 영감이 흘러 바다가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참 재밌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이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감과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