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템플스테이 X 드뷔시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금산사 템플스테이 X 드뷔시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이번 달은 그림과 음악의 연결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과 클래식 음악을 연결시켜볼까 합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고 온도계 바늘도 40 근처를 오갔습니다. 더위를 피하거나 이기기 위해 보양식 먹기, 외출 자제하기, 해가 지고 난 후 한강변에서 캠핑하기 등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저마다의 방법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이열치열을 위해 북한산 근처 절에서 템플스테이 체험을 했습니다. 북한산의 정기를 받으며 이색적인 체험을 하고 싶었던 것 외에도 템플스테이를 신청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최근 벌여놓은 여러 개의 일들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커져 욕심을 내려놓는 법, 나아가 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약간이라도 배워오고 싶었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길을 10분쯤 올라가자 북한산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시멘트 바닥만 보며 생활하다가 초록과 적갈색으로 가득한 숲을 보니 갑자기 비현실적인 세계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로 향하는 길이 생각보다 거칠고 경사가 높아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땀범벅. 템플스테이 담당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선풍기 한 대와 죽비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저는 1박 2일 체험 형 템플스테이를 선택했는데 염주 만들기, 108배하기, 발우공양 체험하기, 새벽 예불 참여하기, 종과 목어 직접 쳐보기, 명상하기, 절 청소하기, 해탈문 지나기, 등산하기, 비구스님과의 다담 등 프로그램이 알차게 짜여 있었습니다.
검은 도화지 위 별과 달의 포물선을 눈으로 쫒다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좋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비구스님이 직접 타주시는 작설차를 마시며 진행했던 문답시간. 생각도, 욕심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불면증이 와 고민이라고 했더니 욕심, 혹은 꿈이라고 부르는 물 컵을 자유자재로 취했다 내려놓는 법을 연습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인생이라는 ‘학교’를 다니면서 ‘숙제’에 질질 끌려 다니면 되겠냐고. 나에게 주어진 숙제들을 즐겁게 해내면서 학교를 행복하게 ‘졸업’하라고. 이 말씀이 두고두고 생각이 납니다. 제가 비록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템플스테이 체험으로 인해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더욱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의 글, 그림, 음악, 강연활동 등에도 이 체험으로 얻은 영감들이 무의식중에 묻어날 것 같고요.


제가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며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작곡가와 음악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올해 사후 100주년을 맞은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영감을 중요하게 여겼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두려움이 없었고, 동양과 서양의 음악을 결합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곡이 ‘영상’ 2권의 2번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Et la lune descend sur le temple qui fut)’입니다.
드뷔시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영상(Images Book)’은 총 2권으로 1권에 3곡씩, 총 6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독특하면서도 시각적인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1권은 ‘물의 반영’, ‘라모를 찬양하며’, ‘움직임’, 2권은 ‘잎새로 흐르는 종소리’,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금빛 물고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연과 사물의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주도했던 드뷔시는 영상에서도 그의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드뷔시는 이 영상의 작품성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곡을 출판업자에게 보내며 쓴 편지에 ‘이 작품은 슈만이나 쇼팽과 견줄만한 작품으로 피아노로 쓴 시’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영상 2권의 2번인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에서 드뷔시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인 ‘가믈란(Gamelan)’과 같은 분위기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가믈란은 철금, 실로폰, 북, 징 등 타악기 위주로 이루어진 합주형태이자 그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일컫는 말로 인도네시아의 모든 왕을 다스렸던 신 ‘상 향 구루’가 맨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신들에게 신호를 보낼 방법이 필요해 징을 발명했고, 더 복잡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여러 개의 징을 더 만든 것이 가믈란의 탄생 배경이라고 합니다.


드뷔시는 1889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처음 가믈란 음악을 듣고는 명상적인 분위기, 5음 음계, 리듬 등을 그의 음악에 적극적으로 차용했습니다.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새로운 색깔과 톤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던 드뷔시에게 이 가믈란 음악은 새로운 자극제가 된 것이죠. 가믈란 악기들은 온음계로 조율이 되는데 서양악기처럼 정확한 간격으로 조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음정을 내어도 음들이 서로 부딪힘으로써 묘한 분위기와 독특한 울림을 냅니다. 드뷔시뿐만 아니라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벨라 바르톡(Bela Bartok, 1881-1945), 프란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 1899-1963),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 등도 가믈란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습니다.


프랑스 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그림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가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켰고, 인상주의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드뷔시를 선두로 하는 인상주의 음악이 생겼고, 많은 서양 음악가들이 동양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고, 선배 음악가의 곡들이 후배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저의 칼럼 제목이기도 한 ‘Connect Art’처럼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피어나는 예술의 신비로움을 이번 칼럼을 쓰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