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X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 X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세상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수많은 커플들이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플은 아마 없을 듯합니다. 셰익스피어 자신에게도 대단한 명성을 안겨주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이러니하게도 4대 비극(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이나 5대 희극(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한 여름 밤의 꿈, 십이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 희곡은 희극일까요, 비극일까요? 정답은 희비극입니다. 희극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 둘을 비롯하여 많은 등장인물이 죽고,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오랫동안 반목하며 지냈던 몬태규와 캐퓰릿 두 가문이 화해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되기 때문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초판이 1597년에 나왔으니 세상에 나온 지 40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동안 이 작품은 수많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여전히 연극, 음악, 미술, 영화, 뮤지컬, 발레, 오페라, TV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장르로 넘어온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를리오즈(Louis-Hector Berlioz, 1803-1869)의 합창 교향곡,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의 환상 서곡,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 1891-1953)의 발레음악과 이를 편곡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의 오페라 등 새로운 색과 향기를 가진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이 중에서도 저의 귀를 사로잡은 것은 프로코피예프의 발레음악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종종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재탄생되곤 했지만 발레음악은 전무했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노 디아길레프(Sergei Pavlovich Diaghilev, 1872-1929)와 여러 차례 같이 작업하며 발레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발레음악으로 작곡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1934년, 발레음악을 의뢰했던 키로프 극장이 돌연 뜻을 바꾸어 의뢰를 취소하자 프로코피예프는 볼쇼이 극장에 이 작품을 넘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처럼 두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며 끝을 맺기를 원했던 프로코피예프와는 달리 해피엔딩을 원하는 극장 관계자들 때문에 의견 대립이 있었습니다. 또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전의 발레음악들과는 아주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발레단 측에서는 이런 난해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결국 1935년, 줄리엣이 부활하여 해피엔딩을 맺도록 구성을 바꾸고 난 후 볼쇼이 극장 무대에서 초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무용수 없이 발레음악의 일부만 연주되었습니다. 자신의 철학과 감정을 작품에 가감 없이 담고자 하는 예술가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큰 뜻을 갖고 발레음악을 작곡했지만 막상 발레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힘들 것을 깨닫자 프로코피예프는 이 곡을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으로 편곡합니다. 1936년, 1937년 두 차례에 걸친 오케스트라 공연이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이에 힘입어 결국 1940년에 키로프 극장에서, 1946년에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공연을 무대에 올리게 됩니다. 그것도 비극적 결말로 수정한 발레음악과 함께요. 프로코피예프에게는 그 동안의 좌절감, 실망감, 아쉬움을 상쇄시켜 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높은 비용과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발레공연보다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이 더 많이 연주되곤 합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은 총 10개 악장으로 아래와 같이 이름 붙여졌습니다.


1번 몬태규 가와 캐퓰릿 가
2번 어린 소녀 줄리엣
3번 마드리갈
4번 미뉴에트
5면 가면 무도회
6번 로미오와 줄리엣
7번 티볼트의 죽음
8번 로렌스 수사
9번 이별을 앞둔 로미오와 줄리엣
10번 줄리엣 무덤가의 로미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그의 곡 전반에서 나타나는 이국적인 분위기, 기계적인 리듬, 불협화음, 고전적이지 않은 화성진행 때문에 조금은 생경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존경하는 한 음악가를 알아가는 재미있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