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어때요?

 


커피 한 잔 어때요?

날이 추워지니 실내에서 따뜻한 바닐라 라떼 한 잔과 함께 음악을 곁들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하루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저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터키속담,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모스카토 와인보다 부드럽다’라는 바흐의 커피칸타타 가사에 굉장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사랑도 대단합니다. 일주일간 쌀을 7번 섭취하고, 커피를 12.3잔 마신다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으니까요.
유명한 음악가 중에도 커피 애호가들이 많습니다. 모차르트는 연주가 끝나면 당구장에서 블랙커피와 담배 한 대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고, 베토벤은 정확히 60개의 원두에서 추출한 커피만 마셨는데, 오늘날 한 잔의 커피를 만들 때 10여개의 원두를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진한 커피를 선호했던 것입니다. 말러 역시 하루를 커피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모닝커피에 넣을 우유를 난로에 데우면서 종종 손까지 데었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에 집중하느라 가끔씩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에는 커피로부터 받은 영감을 음악 속에 녹여낸 작곡가들과 곡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각자 취향에 맞는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향과 맛을 음미하며 읽으셔도 좋겠네요.



바흐 – 커피 칸타타
J.S. Bach –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BWV 211

이 곡은 ‘커피 칸타타’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조용히 하세요, 떠들지 말고’가 원제입니다. 내용과 가사를 살펴보면 유머와 풍자가 가득합니다. ‘커피를 마시면 얼굴이 검정색이 된다, 불임이 된다’ 등 떠도는 소문 때문에 커피를 금지하는 아버지와 커피와 사랑에 빠진 딸의 실랑이를 담은 곡입니다. 딸이 “하루 세 잔의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구운 염소처럼 바싹 마를 것”이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협박합니다. “건강에 해로운 커피를 끊지 않는다면 약혼자와 결혼시키지 않을 거야!”
바흐의 유일한 실내 칸타타이자 희극적인 내용을 담은 이 칸타타는 한마디로 커피 광고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짐머만 커피하우스’의 의뢰로 이 곡을 작곡, 연주하게 되는데 정부가 외화낭비라는 구실로 규제했던 커피의 홍보, 커피하우스의 홍보가 주목적이었습니다. 바흐 시대 커피하우스에는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당시 짐머만 커피하우스에서의 초연 때 남성 성악가가 딸의 역할을 맡아 유머러스한 느낌이 더욱 강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 – 호두까기 인형 중 ‘아라비안 댄스’
P.I. Tchaikovsky – The Nutcracker ‘Arabian Dance’
매년 겨울 여러 단체들이 앞 다투어 올리는 공연 중 하나가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죠. 볼거리, 들을거리가 가득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았기에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레퍼토리로 꽃의 왈츠, 사탕요정의 춤, 중국의 춤 등 악장마다 개성 넘치는 멜로디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 5번째 악장인 ‘아라비안 댄스’는 ‘커피 요정의 춤’이라고도 불리며 신비롭고 나른한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잉글리시 호른과 탬버린을 사용해 당시 서구 음악가들이 상상했던 동양적인 분위기를 냈고, 발레 공연에서도 남녀무용수가 아라비안의 의상과 춤을 재현합니다. 이 곡은 p가 5개까지 붙으며 끝이 나는데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킬 때처럼 아쉬움과 여운을 남깁니다.



피아졸라 - 탱고의 역사 중 ‘카페 1930’
A. Piazzolla – History of the Tango ‘Cafe 1930’

피아졸라는 값싼 음악으로 여겨졌던 탱고의 수준을 무대 위에서 정식 연주되는 음악 장르가 될 수 있도록 한 단계 격상시킨 작곡가입니다. 젊은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준 스승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 1887-1979)도 피아졸라표 탱고가 탄생하는데 한 몫 했죠. 피아졸라 자신의 음악 인생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는 ‘탱고의 역사’는 ‘보르델 1900, 카페 1930, 나이트클럽 1960, 오늘날의 탱고’ 총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악장에서는 사창가의 여자들이 다양한 언어로 재잘거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탱고를, 2악장에서는 탱고를 춤의 배경음악이 아닌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인식하는 관객이 생겼기에 더욱 음악적이고 로맨틱한 탱고를, 3악장에서는 브라질의 보사노바와 새로운 탱고양식이 합쳐져 템포가 빨라지며 큰 변화를 맞은 탱고를, 맨 마지막 악장에서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탱고를 그렸습니다.



숀필드 – 카페 뮤직
P. Schoenfield – Café Music

현재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숀필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미국 민속음악과 클래식을 접목시킨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고, 탈무드와 수학 분야에도 큰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1985년 어느 날 저녁, 숀필드는 담배연기 가득했던 미네소타의 한 식당에서 저녁시간 내내 연주했던 피아노 트리오로부터 영감을 얻게 됩니다. 가벼운 클래식, 20세기 초 미국 음악, 집시풍의 음악,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음악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이 모두 섞여 있던 연주였습니다. 이후 숀필드는 그 날 방문했던 것 같은 고급 식당에서도,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연주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high-class dinner music’을 만들고자 하였고, 그렇게 탄생한 곡이 ‘카페 뮤직’입니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음악 스타일로 구성된 이 곡은 숀필드의 예상과 달리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연주되고 있습니다.
커피와 클래식 음악.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입문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점차 자신만의 취향을 갖게 된다는 것, 혼자 즐겨도 좋으나 여러 명이 함께 해도 좋다는 것, 순간의 감각이지만 기억에 평생 남을 수도 있다는 것, 똑같은 것을 접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떤 커피와 음악 취향을 갖고 계실지 참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