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그 남자의 로망스


그 여자, 그 남자의 로망스

로망스

서정적인 이야기들을 엮어 음유시인이 부르던 노래에서 유래한 ‘로망스’는 특정한 형식이 없고 감상적인 멜로디를 가진 성악, 기악곡으로 발전하여 성행했습니다. 이후 ‘하이든 교향곡 85번 2악장’,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1, 2번’ 등 협주곡의 한 개 악장 또는 곡 제목으로 이름 붙여지게 됩니다.


클라라와 로베르트
음악사에서 유명한 커플을 꼽아보라고 하면 클라라(Clara Schumann, 1819-1896)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다사다난하기 때문이죠. 클라라가 11세, 로베르트가 20살 때의 첫 만남,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로베르트의 피아노 스승이었던 비크 교수(Friedrich Wieck, 1785-1873)가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아 소송까지 가게 된 격렬한 의견 대립, 결국 클라라의 21번째 생일 전날 치르게 된 결혼식, 라인 강에 뛰어들어 자살시도를 하는 등 로베르트의 정신병이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짧고도 행복했던 결혼생활...


우리에게 클라라 슈만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로베르트 슈만의 명성은 사후 그의 작품들을 정리, 연주, 홍보에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클라라 슈만 덕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히려 슈만부부가 살았던 시기에는 ‘세계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의 남편 로베르트’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클라라는 요즘 말로 치면 원더우먼이자 슈퍼맘이었습니다. 전 유럽을 무대로 연주활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고, 그 사이 8명의 아이를 낳아 길렀고, 로베르트의 뮤즈이자 내조하는 아내였고, 자잘한 집안일을 처리했고, 슈만의 곡들을 틈틈이 연주하며 그의 작품들을 알렸습니다. 또 작곡에도 재능이 있어 12살 때 첫 곡을 완성하는데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존경하던 작곡가 멘델스존의 악풍이 짙게 묻어납니다. 20개의 피아노 독주곡, 4개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29개의 성악곡, 모차르트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카덴자 등 총 66개의 작품들을 남겼는데 ‘Liebesfrühling(1841)’, ‘Piano Trio Op.17(1846)’, ‘Drei Romanzen(1853)’, ‘Variations on a Theme of Robert Schumann(1854)’등이 그녀의 대표작입니다.


하지만 클라라는 자신의 작곡 실력과 창의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일기에 ‘나는 한 때 작곡에 재능을 지녔다고 생각했지만 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여자들은 작곡에 대한 열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작곡가가 된 여자는 아무도 없건만 내가 예외를 되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라고 써져있거든요. 작곡계와 출판계에 다양한 인맥과 힘이 있었던 로베르트가 클라라의 작곡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지 않았고, ‘여자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존재,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의식이 짙게 깔린 당시 사회의 분위기도 여기에 한 몫 했습니다.


클라라 슈만의 로망스
클라라 슈만은 1853년, ‘3개의 로망스 Op.22’를 작곡하여 슈만부부의 오랜 친구이자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에게 헌정합니다. 클라라는 요아힘과 함께 이 곡을 종종 연주했는데 독일의 조지 5세는 ‘극도로 황홀하다’는 감상평을 남겼고, 베를린의 음악신문은 ‘세 곡 모두 각각의 특색을 갖고 있고, 섬세하다’라고 평했습니다. 특히 영국의 일간지는 ‘생기 넘치면서도 가슴 절절한 곡이다. 클라라가 그녀의 남편보다 작곡실력이 낮게 평가되는 것이 그녀의 커리어 중 유일한 오점’이라고 쓸 정도였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의 로망스

로베르트는 총 2개의 로망스를 작곡했습니다. 결혼하기 전 해인 1839년, ‘3개의 로망스 Op.28’를 작곡하여 클라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줍니다. 클라라는 이 선물에 크게 만족했고 ‘이 곡만큼 부드러운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특히 사랑의 이중창 같은 2번째 곡이 제일 마음에 든다’라고 편지에 씁니다. 곡의 완성도에 큰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던 로베르트는 클라라의 권유로 이 곡을 일부 수정하여 1840년 10월에 출판하게 되고, 후에 자신의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로 이 곡을 꼽습니다.
또 하나는 ‘오보에와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 Op.94’로 슈만 전 생애를 통틀어 제일 생산적이었던 해인 1849년에 작곡됩니다. 그의 100번째 소품이기도 한 이 곡 역시 클라라 슈만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줍니다. 이 곡을 출판할 때 출판업자인 니콜라스 심록(Nikolaus Simrock, 1751-1832)이 곡의 표지에 ‘바이올린과 피아노,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곡’이라고 추가로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지만 슈만은 ‘애초에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을 염두에 두고 썼으면 완전히 다른 곡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거절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로베르트의 염원과는 다르게 바이올린 버전으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