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니니와 리스트

인싸와 아싸

한동안 각종 방송 매체, SNS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가 있습니다. 인싸와 아싸. ‘인싸’는 Insider의 줄임말로 어디서든 두루두루 잘 어울려 지내며 인기가 많은 사람을 말합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인싸는 ‘관종’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며 부정적인 어감이 강했지만 이제는 긍정적인 어감이 더 강합니다. 반면 ‘아싸’는 Outsider의 줄임말로 무리와 섞이지 못하고 겉돌며 존재감이 없는 사람, 즉 ‘왕따’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오타쿠’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던 아싸였지만 요즘에는 자청해서 아싸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혼밥, 혼술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 집단보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요즘 사람들의 속마음이 반영된 것이랄까요.

인싸와 아싸는 어느 시대든 항상 존재했을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주류와 비주류,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리더와 팔로워 등이 있겠죠. 이번 호에서는 클래식 속 인싸이더들, 그들과 영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 대표곡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Niccolò Paganini (이탈리아, 1782-1840)

뛰어난 실력과 무대 매너, 수려한 외모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방탄소년단의 원조가 있었으니 바로 니콜로 파가니니와 프란츠 리스트입니다. 1800년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이 둘은 ‘유럽 순회 연주’라는 개념을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가 뛰어났습니다. 공연이 열릴 때마다 매진 행렬이었고 동시대 사람들은 이들을 우상처럼 여기며 그들의 장갑, 의복, 모자 등을 모방하기도 했습니다.

우아하고 세련된 몸가짐, 흰 장갑과 깔끔한 스타일을 고수했던 리스트와 달리 파가니니는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 창백한 얼굴빛과 바싹 마른 몸매, 타이트한 검정색 옷을 즐겨 입는 등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무대 연출력도 탁월했는데 바이올린의 현을 공연 중 하나하나 끊어버리고 마지막에는 제일 낮은 G선 하나로만 연주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또 조명을 아주 낮춰 암흑 속에서 연주하며 사람들을 긴장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예민한 사람들은 공연 중 기절하기도 했다죠.

파가니니는 도박 중독자였는데 연주가 끝나면 관객들에게 인사할 틈도 없이 도박장으로 달려가기 일쑤였고, 어떤 날은 도박 빚을 위해 그의 보물과도 같은 바이올린을 팔아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명성과 부를 쌓았지만 도박과 방탕한 생활로 초라하게 생을 마무리했던 파가니니. 죽어서도 평범하지 않았던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생전의 별명 때문에 가톨릭교회의 반대로 매장이 거부되어 36년간 유럽 전역을 전전한 후에야 겨우 묻힐 수 있었습니다.



대표곡

La Campanella (라 캄파넬라):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마지막 악장이지만 뛰어난 작품성 덕분에 따로 떼어져 많이 연주되는 곡입니다. 라 캄파넬라는 이태리어로 ‘작은 종’이라는 뜻으로 곡 중간 중간 종이 경쾌하게 딸랑딸랑거리는 부분을 찾으며 들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Caprice Op.1 No.24 (24개의 카프리스): 파가니니는 자신만이 연주 가능한 화려한 기교를 담은 바이올린 곡들을 작곡했는데 ‘24개의 카프리스’도 그 중 하나입니다. 각각의 곡이 트릴, 하모닉스, 화음 등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모든 테크닉을 골고루 다루고 있습니다. 이 중 맨 마지막 곡인 24번은 각종 대중 매체에 등장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곡입니다.




Franz Liszt (헝가리, 1811-1886)

리스트는 파가니니에 비해 팬 서비스가 뛰어났습니다. 산더미 같은 팬레터에 일일이 답장을 했고, 거장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소장하기 원하는 팬들을 위해 머리를 잘라 보내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자신의 머리 색깔과 비슷한 색의 털을 가진 개를 길렀다고 합니다.

리스트가 활동하던 1800년대 초반 공연장의 분위기는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에도 관객석은 잡담으로 시끌벅적했고 심지어 음식을 섭취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장통과 다름없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숨소리 하나도 조심해서 내야하는 분위기로 바꾼 것도 바로 리스트입니다. 어느 연주에서는 리스트가 치던 피아노를 갑자기 멈추고는 수다를 떨고 있던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왕께서 입을 열고 계시니 음악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군요!” 여기서 질문 하나. 피아니스트는 왜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관객 쪽으로 향하게 의자에 앉을까요? 리스트의 오른쪽 얼굴이 왼쪽보다 잘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앉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리스트로 인해 굳어진 전통이죠.

20대 초반, 파리에 머물며 음악교사 생활을 하던 리스트는 당시 사교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살롱에 드나들게 됩니다. 쇼팽, 베를리오즈, 빅토르 위고, 조르주 상드, 하이네 등 귀족, 예술가,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하게 됩니다. 특히 살롱의 주최자였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리스트 사이에서는 세 아이가 태어납니다. 남성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살롱 문화를 이끌었던 어머니의 지성과 아버지의 음악적 끼를 물려받은 딸 코지마는 훗날 리스트와 동년배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바그너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죠. 바그너 사후에는 바그너 오페라 축제를(바이로이트 음악제) 세계적인 축제로 키워내며 유능한 예술감독,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이 맞네요.



대표곡

Liebestraume (사랑의 꿈): 어딜 가나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자신 또한 나누어줄 사랑이 넘쳤던 리스트. 그의 애정생활 또한 활화산처럼 뜨거웠습니다. 유부녀였던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 한참 사랑에 빠져있을 때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라는 시에 멜로디를 붙여 성악곡을 작곡했고, 이를 다시 피아노용으로 편곡하여 ‘사랑의 꿈’이 탄생하게 됩니다.

6 Grand Paganini Etudes (6개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평소 파가니니를 흠모하고 있던 리스트는 1832년, 살아있는 전설을 눈앞에서 마주하고는 ‘나는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라고 결심합니다. 파가니니의 곡들에 자신의 감성을 더하여 편곡, 죽을 때까지 즐겨 연주한 ‘파가니니 대연습곡’은 바이올린 버전과는 또 다르게 피아노만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