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낡은 시대, 너무 젊은 영혼의 사티와 그의 연인

이번 칼럼에서는 19세기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기이한 행동과 독특한 음악으로 이름을 알린 에릭 사티와 그의 유일한 연인이자 화가인 쉬잔 발라동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은 영혼을 갖고 이 세상에 왔다”

-에릭 사티




Erik Satie (프랑스, 1866-1925)

평생 검정 벨벳 양복, 검은 우산, 검은 모자 차림으로 몽마르뜨 언덕을 거닐며 동네 아이들에게 ‘가난뱅이 아저씨’라고 놀림 받았던 에릭 사티. 그는 ‘음악가’라는 명칭 대신에 ‘소리를 섬세하게 측정하는 기술자, 음파 측정가’라고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독특함은 여러 일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티는 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아버지는 곧 피아노 교사인 계모와 재혼합니다. 계모의 강압적인 음악교육과 파리음악원 선생님들로부터 ‘음악원에서 제일 게으르고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 학생’이라는 평을 듣고 음악에 흥미를 잃고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고의적으로 옮은 기관지염으로 제대하게 되죠.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지 파리에서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불리던 시기에 활동한 그이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은둔자를 자처했고,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오랫동안 가난한 음악가 생활을 면치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 싼 방을 찾아 전전하다가 33세에 검은 고양이(Le chat noir)라는 카바레의 피아니스트로 취직하여 당시 유행하던 음악들을 그만의 스타일대로 편곡, 연주하게 됩니다. 카바레 검은 고양이는 작가, 배우,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철학을 이야기하고, 자신만의 예술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장소였죠. 여기서 사티 특유의 ‘가구 음악’ 스타일이 탄생합니다.


사티는 당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로 대표되던 낭만주의 음악사조를 의도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두 개의 테마가 소나타 형식(제시부-발전부-재현부)을 충실히 따르며 길이가 길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나머지 사티의 음악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참신함과 간결함을 띄게 됩니다. 또 사람들이 카바레에서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대화하는 동안 한구석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자신의 음악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가구 같은, 그 공간을 떠도는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말년의 사티는 당시 카바레에서 연주했던 곡들이 자신의 원래 천성과는 어긋나는 것들이었다며 저급한 음악 취급했지만 그 중 한 곡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난 너를 원해(Je te veux)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유머가 가득한 피아노 소품들을 작곡, 출판한 덕분에 46세부터 사티는 조금씩 이름값을 떨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사티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젊은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와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음악이 난해한 사티의 음악을 제치고 파리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세련된 음악적 언어를 구사했던 그들은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원했던 파리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았던 것이죠.

파리 근교의 작은 집에서 맞은 사티의 죽음은 그의 음악처럼 간결했습니다. 연인과 결별 후 27년간 아무도 들이지 않았던 그의 방에는 그가 즐겨 입던 벨벳 양복 12벌, 검은 모자와 우산들 그리고 그가 일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쉬잔 발라동에게 보내는 편지 세 통만이 발견되었습니다.



대표곡

Gymnopedie (짐노페디) : 총 3개의 모음곡으로 이 중 1번이 제일 유명합니다. 자장가를 연상시키는 느릿느릿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침대 광고 등의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원래 짐노페디는 스파르타 소년들이 나체로 추던 종교적인 춤을 말합니다.

Je te veux (난 너를 원해) : 유일했던 연인 쉬잔 발라동과 사귀던 당시 작곡한 곡으로 세련된 제목과는 달리 직설적인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사티가 검은 고양이 카바레에서 일할 당시 즐겨 쳤던 곡입니다.





Suzanne Valadon (프랑스, 1865-1938)

쉬잔 발라동은 삶 자체가 한 편의 예술이었습니다. 찌들어지게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서커스단에서 공중그네를 타던 소녀였고, 퓌비 드 샤반, 르누아르, 로트레크, 드가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몽마르뜨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자신이 그들의 그림 속에 남아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에 대해 자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던 쉬잔은 곧 자신 안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는 20대부터 화가로 활동합니다. 점차 이름을 크게 알렸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렸고, 리옹의 고성을 구입해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냈으며 유명인사들만 묻히는 생 피에르 교회에 몸을 뉘였습니다.


사티와 발라동은 오베르주 뒤 클루(Auberge du Clou)라는 카바레의 오프닝 공연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발라동은 독특한 청년 사티에게 흥미를 가졌고 그림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둘은 첫눈에 반했고 그날이 지나기 전에 사티는 쉬잔에게 청혼합니다. 이틀 뒤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는데 사티가 발라동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섬세한 눈빛, 부드러운 손, 아이같이 작은 발이 눈앞에 아른거리오.”


어느 날 사티는 발라동에게서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별을 선언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라동이 발코니에서 추락하여 경찰이 출동하게 되는데 사티가 밀쳤다는 설도 있고, 발라동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지독하고도 떠들썩했던 연애는 6개월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사티의 삶에서 유일했던 연애였습니다.


쉬잔 발라동은 자화상을 몇 차례 그렸는데 그중 몇 점은 누드화입니다. 남성 화가들이 욕망 어린 시선으로 해석한 수동적인 여성 누드가 아닌 여성이 그린 여성 누드, 발라동의 강한 자의식, 당당한 삶의 태도가 투영된 누드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닙니다. 1938년, 발라동은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자신의 누드를 그렸습니다. 젊은 날 윤기가 흐르던 긴 머리카락은 짧게 잘랐고, 육감적이던 몸매는 이제 탄력을 잃고 주름졌습니다. 하지만 솔직함과 당당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고 그림에도 그대로 배어납니다. 남성으로 가득한 예술계에서, 천한 신분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선 쉬잔 발라동은 그림 밖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있는 걸까요.




쉬잔 발라동이 그린 에릭 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