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에 취해 쓴 곡이 인생명곡이 되다!

한동안 뉴스에 연일 마약 이야기가 오르내렸습니다. 마약청정국이라고 여겨졌던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을 보고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고요. 경찰이 마약을 복용한 사람들의 검거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 그들의 재활치료와 교육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고 있다는 비판도 들립니다. 같은 마약이라도 나라별로 인식의 차이, 처벌의 정도가 다른 것이 흥미롭습니다. 중국에서는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참패했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마약사범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반면 미국 몇 개 주, 네덜란드 등에서는 대마초의 복용이 합법이기도 합니다. 클래식계에서도 ‘마약’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를리오즈입니다.




베를리오즈 (Hector Berlioz, 프랑스, 1803–1869)

한참 프랑스 혁명전쟁(1792-1802)이 벌어지던 시기, 피아노 한 대 구경할 수 없었던 남프랑스 시골에서 자란 베를리오즈는 12살까지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독학으로 화성학을 공부했고 지방 실내악단을 위해 작곡을 할 정도로 열정과 끼를 보였습니다.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베를리오즈의 음악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의학 공부를 강요하며 파리로 유학을 보냅니다. 의학 공부에 열중하는 것도 잠시, 베를리오즈는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연극과 오페라를 보러 다니고, 거장들의 악보를 사보하는 등 음악적인 갈증을 채웠고 결국에는 23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버지와 8년간 마찰하게 되고 경제적인 지원마저 끊기게 됩니다. 시작은 늦었어도 천재적인 음악성 덕분에 27세, 칸타타 ‘사르다나팔의 죽음(La dernière nuit de Sardanapale)’으로 로마대상(Prix de Rome, 파리 음악원 작곡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경연으로 상당한 상금과 명예가 보장되었음)을 수상, 부상으로 이태리 유학을 떠납니다. 하지만 향수병에 시달린 나머지 총 기간인 3년을 못 채우고 18개월 만에 귀국하게 됩니다.


지난 칼럼에 소개해드렸던 에릭 사티(Erik Satie, 프랑스, 1866-1925)와 마찬가지로 베를리오즈도 가난한 생활을 오래도록 했습니다. 젊은 시절 작곡, 비평 활동만으로는 절대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었던 베를리오즈는 다행히도 뛰어난 지휘 실력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바이올린의 거장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이탈리아, 1782-1840)를 감동시킬 정도였다고 합니다. 파가니니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베토벤의 뒤를 잇는 천재’라고 칭송하며 경제적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죠. 동시대 음악보다 몇 년을 앞서간 그의 음악 스타일과 기법들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늘 논쟁거리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은 다른 유럽 국가들, 특히 러시아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자국에서는 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음악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많은 동료 음악가들을 적으로 두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1846년, 프랑스 캐리커처 화가가 그린 베를리오즈의 콘서트. 

온갖 악기가 굉음을 내는 무대, 놀라 자빠지는 관객들, 위풍당당한 장군처럼 지휘를 하고있는 베를리오즈의 모습을 풍자했다.




표제음악 (Program music)

대개 작곡가들은 관현악곡 작곡을 위해 여러 악기를 필수적으로 익히고 그 중 한 두악기 정도는 능숙하게 다룹니다. 하지만 베를리오즈는 어릴 때 플룻과 기타 렛슨을 조금 받았던 것을 제외하면 다른 악기들, 특히 피아노조차 제대로 다룰 줄 몰랐습니다. 몇몇 비평가는 그의 이런 성장배경이 틀에 갇히지 않고 창의적으로 작곡할 수 있던 이유라고 말합니다.


베를리오즈는 평생토록 몇몇 기이한 악기들에 빠져있었는데 그 중 제일 이상한 악기가 옥토베이스(Octobass)입니다. 현악기군 중에 제일 큰 악기인 더블베이스보다 큰 악기로 높이가 4m에 달하고, 이 거대한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연주자가 올라설 단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 악기가 오케스트라에 정식 편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많은 음악가들은 코웃음을 쳤고, 다행히 아직까지도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단 3대만 남아있는 이 악기를 켤 수 있는 전문 연주자는 한 명 뿐이죠. 옥토베이스뿐만 아니라 각 악기가 가진 음색과 테크닉을 곡 속에서 자유롭게 실험하는 것을 즐겼던 베를리오즈는 ‘표제음악’이라는 소설적 교향곡, 극적인 줄거리를 가진 관현악곡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곡이 ‘환상교향곡’입니다.




환상교향곡의 영감이 되었던 뮤즈이자 베를리오즈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해리엇 스미슨.

우여곡절 많았던 사랑의 끝은 좋지 못했다.



마약에 취해 쓴 환상교향곡 (Symphonie fantastique)

베를리오즈가 살았던 당시 아편은 마취, 진정, 최면, 해열 등의 효과가 있는 일종의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일반인들이 아편을 음용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었고, 오히려 몇몇 의사들에 의해 장려되었습니다. 베를리오즈 또한 아편으로 인해 인생 최고의 걸작인 ‘환상교향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이 곡은 ‘어느 예술가의 생애와 에피소드’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데 말 그대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곡입니다.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젊은 예술가가 고통에 빠져 아편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치사량을 먹지 않아 혼수상태에 빠진 채 그 여인이 등장하는 온갖 환상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입니다. 악보를 출판할 때 서문처럼 이런 줄거리를 직접 써넣었지만 나중에는 환상교향곡이라는 제목만 남기고 모두 삭제했습니다.


환상교향곡은 자살이라는 파격적인 주제,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 금관과 타악기 등을 추가한 악기 편성, 각 악기들의 참신한 주법과 실험적인 음향 등 곳곳에서 독특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점이 ‘고정 악상 idée fixe’인데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곡의 분위기를 암시하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악구를 뜻하죠. 이는 후에 바그너의 음악극이나 교향시에서 ‘라이트모티브 Leitmotif’로 발전되어 쓰입니다. 4악장 구성으로 된 전형적인 교향곡의 틀을 깨버린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 곡은 총 5악장 구성으로 각 악장에도 제목을 붙였는데 1악장은 꿈과 열정, 2악장은 무도회, 3악장은 들판 풍경, 4악장은 단두대로 가는 행진, 5악장은 마녀들의 밤의 축제와 꿈입니다. 괴테와 셰익스피어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을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던 베를리오즈의 면모가 각 제목에서 돋보입니다.




베토벤 후대 작곡가들은 그가 완벽에 가깝게 확립해놓은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작곡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음악계에서는 한때 가곡, 오페라 작곡이 유행하기도 했죠. 베를리오즈도 ‘베토벤 음악보다 더 새롭고 훌륭한 음악이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하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환상교향곡이라는 전무후무한 곡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분들은 꿈을 향해 어떤 도전을 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