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의 음악, 화가 뷔페의 그림

부인 아나벨과 아나벨을 그린 그림 앞에서 찍은 사진



화가 베르나르 뷔페 (프랑스, 1828-199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나는 광대다_ 베르나르 뷔페 展: 천재의 캔버스>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우리에게 이 이름은 약간 생소하지만 ‘20세기의 증인’이라 불렸을만큼 온몸으로 겪었던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대를 그림으로 재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피카소(스페인, 1881-1973)와 종종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전부였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3년간 두문불출하며 그림만 그리다가 20세에 세상에 나와 비평가상을 받으며 단숨에 파리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호감형의 외모, 뛰어난 그림 실력, 이미 20대에 움켜쥔 성공과 부, 유명한 가수이자 작가였던 아름다운 아내, 심지어 성품까지 순수하고 온화했습니다. 다 가졌던 거죠. 하지만 고성과 롤스로이스 등 값비싼 물품들을 구입하며 대중들에게 질투와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화가보다는 셀럽으로의 존재감이 더 컸던 것이죠. 말년에는 파킨슨병으로 붓을 들기도 힘들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른손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죠. 말년의 그림들을 보면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었던 얇고 날카로운 검정색 직선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두껍게 그려져 있습니다.


밀레니엄 시대가 오기 1년 전, 그림 없는 자신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며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자살합니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그렸던 시리즈가 <죽음>입니다. 태아를 잉태하고 있거나 새빨간 심장을 갖고 있는 해골들을 그렸죠. 이는 뷔페가 삶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쥐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끝내 죽음 앞에 굴복한 그를 보면서 여러 작곡가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혹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창작열을 끝까지 불태우며 작곡한 곡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베르나르 뷔페의 마지막 그림 중 하나인 <죽음 10>



삶과 죽음 사이의 음악

모차르트 (오스트리아, 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모차르트는 진작에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성인이 되고난 후에는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독특한 개성 때문에 후원자들과 마찰을 빚게 됩니다. 1778년,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구직 여행을 떠난 모차르트는 파리 청중들의 냉담한 반응과 큰 수확도 없는 구직 상황에 실망합니다. 그러던 찰나 동행했던 어머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숨을 거두고 맙니다. 당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면 ‘신의 특별한 은총으로 나는 굳건하고 침착하게 모든 일을 견딜 수 있었다네’라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36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하게 단조로 작곡된 21번, 어머니의 죽음 직후에 작곡된 곡을 보면 당시 그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공허함과 어두운 분위기가 주를 이루며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듯한 1악장, 우아한 바로크 시대 춤곡을 연상시키는 2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바라는 모차르트의 염원이 곡 속에 담긴 듯합니다.


슈베르트 (오스트리아, 1797-1828)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는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교사생활을 3년 만에 그만두고 음악가로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때문에 항상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고, 결혼까지 포기해야 했습니다. 몇몇 가까운 친구들만이 그의 음악성을 알아보고 지지와 후원을 해주었죠. 그 친구들의 모임을 ‘슈베르티아데’라고 부릅니다. 31세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600여 개의 아름다운 곡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리트’라고 불리는 독일 가곡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생애 마지막 시기에 작곡한 곡 역시 가곡입니다. ‘겨울 나그네’라는 제목의 가곡집은 사랑의 실패에 삶의 의욕을 잃은 한 청년이 눈보라 치는 겨울, 정처 없이 방황하며 보고 들은 사건들을 나열하는 내용으로 되어있고 동시대 시인이었던 빌헬름 뮐러의 시에 멜로디를 붙였습니다. 이 가곡집을 두고 슈베르트는 “나는 지금까지 작곡한 그 어떤 곡들보다 이 곡을 좋아합니다. 사람들도 틀림없이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애정을 보였죠. 24개의 가곡 중 5번 ‘보리수’가 특히 유명합니다.

가지가 산들산들 흔들리며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 -보리수 가사 중


스메타나 (체코, 1824-1884)

현악 4중주 1번 ‘나의 생애에서’

스메타나는 음악가들 중에서도 유난히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첫 번째 부인과 세 딸을 병으로 연달아 잃고, 두 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체코에서 음악가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서 늘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베토벤처럼 청각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게다가 환청과 환각, 정신이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죠. 스메타나의 주치의는 그에게 작곡과 독서를 멈추라고 했지만 끝까지 창작열을 불태우며 현악 4중주 1번과 2번, 프라하의 카니발 서곡, 폴로네즈, 교향시 ‘나의 조국’ 등을 완성했습니다.

현악 4중주 1번 ‘나의 생애에서’는 본인의 죽음을 예견하고 쓴 자서전 같은 곡으로 지난 삶의 경험들과 추억들, 건강 이상으로 비참해진 현실을 곡 속에 녹여냈습니다. 특히 4악장 말미에는 당시 환청으로 들리던 높은 ‘미’ 음을 음악 속에 집어넣었는데 이 부분을 듣고 있으면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기분이 묘해집니다.


브람스 (독일, 1833-1897)

독일 레퀴엠

브람스가 20살 때 만나 그가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스승 로베르트 슈만이 1856년, 정신병으로 정신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브람스의 어머니도 세상을 떴고요. 두 사람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시기에 나온 곡이 ‘독일 레퀴엠’입니다. 라틴어 가사가 붙어있는 정통 레퀴엠과는 달리 마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로 된 성서 구절들을 브람스가 직접 발췌, 멜로디를 붙였기 때문에 제목 레퀴엠 앞에 ‘독일’이 붙었습니다. 당연히 독일어로 불러야하지만 2차대전 당시 독일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던 미국에서는 영어로 번역하여 불렀다고 합니다.

이 곡으로 브람스는 청중과 비평가 모두를 만족시키며 작곡가로서 큰 성공과 명예를 얻게 되었고,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 클라라는 이 곡을 두고 ‘이 곡이 지닌 이상한 힘은,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고야 맙니다. 보기 드물게 훌륭한 작품입니다. 장엄하고 시적인 음악에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고 차분히 가라앉게도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가는 자, 곡식단을 안고서 노랫소리 흥겹게 들어오리라. 


-독일 레퀴엠 가사 중